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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고 이야기

양서고 이야기 5. 급식

 나는 고1 때 아주 잠깐 양서고 교사를 꿈꾼 적이 있다. 교직에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양서고 교사를 하면 은퇴할 때까지 양서고 급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만큼 급식이 맛있었다. 급식 질이 좋아 영양사 선생님께서 무슨 표창도 받으셨다고 했고 (자세히는 모름), 입학설명회에서는 매번 맛있는 급식을 학교 장점으로 강조했다. 게다가 급식비도 저렴했는데, 양평지역 쌀과 한우를 써서 비용 절감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문제라면 칼로리와 맛은 비례하기 마련이라 살찌는 학생들이 속출했다는 것... 10kg 찐 친구들도 꽤 봤다.

 

 양서고에서 맛있었던 메뉴를 대보라고 하면 졸업한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줄줄이 나온다. 치킨마요, 화덕피자, 수제요거트, 치즈불닭, 나가사끼짬뽕, 파닭, 칼국수, 깍두기볶음밥, 순대볶음특히 치킨마요가 GOAT였다. 양서고 졸업 이후에는 어디 가서 치킨마요를 시키지 않게 됐다. 양서고 치킨마요에 입맛이 맞춰져서 시중의 평범한 치킨마요로는 만족이 안 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을 뒤져서 201511월의 양서고 급식 사진을 찾아냈다. 동아리 한 기수 후배들이 페이스북에 자료를 남겨 두었더라.

  •  삼겹살.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메뉴 아니던가. 당연히 맛있었다. 삼겹살이 나왔던 날 급식실에 벌이 들어왔는데 나랑 같이 밥 먹던 A 양이 상추로 벌 잡은 게 떠오른다. 온 급식실 내 학생들이 A 양한테 박수를 쳐줬었다.
  •  양서반점(짜장면, 짬뽕, 탕수육). 나는 중식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그랬는데, 좋아하는 친구들은 손꼽아 기다렸다. 양서반점이랑 양서분식(떡볶이, 김말이, 오뎅국 etc)은 이런 식으로 항상 묶어서 나왔던 것 같다.
  •  삼계탕은 항상 11닭다리여서 좋았다. 국물도 진하고 살도 야들야들하니 맛있었다.
  •  비빔밥은 어디서든 실패하기 힘든 메뉴다.
  •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아침 메뉴였다. 아침에 바쁘면 몬테크리스토만 챙겨서 등교하며 먹곤 했다.
  •  나가사끼 짬뽕... 나는 나가사끼 짬뽕이라는 음식을 양서고에서 처음 먹어봤다. 한 번 먹어보고는 그다음부터 식단표에 나가사끼 짬뽕이 보이면 형광펜을 쳤다.

  •  이날 레전드. 급식실 입구 앞에 웬 못보던 트럭이 와 있기에 뭔가 했더니 피자 화덕 트럭이었다. 갓 구운 피자에 감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슨 급식에 갓 구운 화덕 피자가 나오냐고.

  •  알밥인가? 사진만 봐서는 무슨 메뉴인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아마 맛있었을 거다.
  •  까르보나라, 아 까르보나라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것도 정말 좋아했다. 웬만한 시중 까르보나라 퀄리티.
  •  찐빵은 기억 안 나고, 그보다 맨 우측 반찬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매운 양념에 떡과 고기가 들어 있는 듯한데 이런 류는 거의 다 맛있었고 특히 치즈불닭이 정말정말 맛있었다.

  •  우측 위의 사진이 양서고 베스트 메뉴 치킨마요다. 이날 블루베리 수제요거트도 같이 나온 모양인데, 아마 9년 전의 나는 이걸 먹으면서 죽도록 행복해했을 거다. 죽기 전에 이만큼 맛있는 치킨마요를 한 번 더 먹을 수 있으려나.

 

 사진은 없지만 추가로 기억나는 3가지 메뉴가 있다.

  •  민진원 블루베리 농장에서 재배된 블루베리. H 선생님께서 농장을 하시는데 매년 학생들을 위해 블루베리를 기증해 주시곤 하셨다.
  •  고2 때 나왔던 양평지역 1+ 한우로 만든 불고기. 이벤트성으로 나왔는데, 맛이 너무 감격적이어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반찬이 나온 시기까지 대강 기억한다. 6월 중하순이었다.
  •  고3 때 나왔던 김밥. 1, 2학년이 전부 정기외박 나가고 학교에 3학년밖에 없던 때였는데, 급식 아주머니들께서 수능 응원해 주신다고 한 학년 전체 분의 김밥을 한 줄 한 줄 싸주셨다. 그 많은 양의 김밥을 싸는 게 웬만한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떡볶이랑 김말이도 같이 나와서 매점에서 라면 사다가 제대로 된 분식 한 상을 차려 먹었다.

 

 양서고 급식으로 미각을 키운 청소년은 어느덧, 다른 것엔 돈 아껴도 먹을 것엔 아끼지 않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렇다고 오마카세나 파인다이닝을 먹으러 다닌다는 건 아니고, 연어초밥이나 육회 같은 게 땡기면 망설이지 않고 시키는 정도? 최근엔 아주 맛있는 규카츠를 먹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소확행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