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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고 이야기

양서고 이야기 3. 괴담과 전설

 

 

당신은 귀신을 믿는가?

 나는 귀신의 존재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입장이었다. 설사 귀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어차피 나는 영적으로 둔감해서 모를 테니 있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양서고에서 2가지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나서는 귀신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파묘에 나오는 귀신이 아니라 해리포터에 나오는 사람 놀리기 좋아하는 피브스 느낌이긴 하지만.

 

 

1. 

2기숙사 404

 

 1학년 여름방학 때 일이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은 기숙사에 잔류할지 본가로 돌아갈지 선택해야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은 아무래도 사교육을 받기 어려웠어서, 보통 학원 수업이나 과외를 원하는 학생들은 본가로 갔다. 나는 룸메이트 J와 함께 기숙사 잔류를 택했다. 사교육보다 자율학습이 나와 더 잘 맞았기 때문이다.

 

 J와 나는 1학기 때 502호를 썼는데, 우리는 처음에 방학 때도 502호를 그대로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방학 일주일 전쯤이었나5층 학생들은 전부 4층 호실로 방을 옮겨야 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방학 때 기숙사에 잔류하는 인원이 적어서 전기세/수도세 절약을 위해 4층만 운영한다는 거였다.

 

 4층 어느 호실로 가게 될까, 새 룸메이트는 누굴까 궁금해하던 차에 방배정표가 나왔다. 새로 쓸 호실은 404호였고, 운 좋게도 기존 룸메이트 J와 함께 방을 쓰게 됐다. 방학 때도 같이 방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좋아서 이 소식을 전하려 J에게 갔는데, 처음에 좋아하던 J는 우리가 404호를 쓴다는 사실을 듣고 바로 질색했다.

 

 “404호 귀신 나오잖아.”

 “그래? 난 처음 들어보는데.”

 “404H네 방!”

 

 이어서 JH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H와 안면이 없었지만 JH는 독서실 자리가 근처여서 서로 친했다.

 H404호에 살기 시작한 뒤로 한 학기 내내 매일 가위에 눌렸다고 한다. 가위에 눌릴 때마다 귀신을 봤는데, 누워 있는 H의 몸 위로 귀신이 올라오기도 했고, 2층 침대에서 귀신이 목을 내밀어 H 머리 옆에 얼굴을 디밀기도 했다고.

 

 H는 그때마다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깨거나, 헉 하는 소리를 내면서 깼다. 매일 밤중에 소리를 내면서 깨다 보니 404호 룸메이트들은 처음에는 잠을 방해받아서 불편해했지만, 사정을 알고 나서는 걱정해주었다.

 매일 잠을 설치니까 당연히 H는 항상 피곤해했다. 수업 시간이나 자습 시간에도 자주 졸았다. H에 따르면 하도 피곤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귀신이 보여도 무서운 게 아니라 짜증이 났다고 한다. ‘아 이 새X 때문에 또 제대로 못 자네.’ 하면서. 가위에서 깨고 나서는 즉시 바로 다시 자려고 시도했단다. 귀신을 또 보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404호 룸메이트들은 H 대신 인터넷으로 가위 안 눌리는 법을 검색했다. 그런데 가위 안 눌리는 방법에 베개 밑에 칼 넣어두고 자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룸메이트들이 H에게 베개 밑에 칼을 넣어보자고 권유했는데, H는 한사코 거절했다. 베개 밑에 칼 넣는 게 귀신 보는 것보다 더 소름 끼친다며.

 

 고민하던 404호 룸메이트들은 H 몰래 H 베개 밑에 커터칼을 넣어뒀다. 그리고 그날 밤 H는 양서고 입학 이래 처음으로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과학 실험으로 따지면 맹검 실험을 통과한 거다.

 H가 전날 밤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고 말하자, 룸메이트들은 좋아하면서 베개 밑에 숨긴 칼을 꺼내서 보여줬다. 그런데 그랬더니 H는 너무너무 싫어하면서 당장 칼을 빼라고 했다고 한다. 자기는 귀신 보고 잠 설치는 게 베개 밑에 칼 넣는 것보다 낫다며.

 

 “그래서 H 아직도 맨날 가위눌려. 나 그 방 무서운데.”

 J가 말했다.

 “어우, 꺼림칙하긴 하다. 그래도 H만 그런 거일 수도 있잖아.”

 “나도 기가 약해서 그런 거 보일 수도 있어. 502호에서도 한 번 이상한 꿈 꿨잖아.”

 

 J502호에서 한 번 가위에 눌린 적이 있었다. J가 가위에 눌렸을 때 바로 옆 침대에 내가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J가 간신히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내 머리맡에서 귀신이 내 머리 뒤의 벽을 쿵쿵쿵쿵 치고 있었다고 한다. (정작 나는 잘 잤다) J가 더 무서워했던 건, 그 꿈을 꾸고 일어나 보니 방 안의 모든 거울이 다 J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502호에서는 밤마다 거울을 엎어두고 자는 풍습(?)이 생겼다.

 

 여튼 이미 정해진 방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귀신 나온다며 방 바꿔 달라는 말을 사감부가 들어줄 리가.

 그렇게 여름방학 때 J와 나는 404호로 이사했다. 다행히 JH만큼 기가 약하지는 않았는지, 이사 간 후 첫 주에 딱 한 번 귀신을 봤고 그 이후로는 내내 잘 잤다. 그런데 좀 소름 돋았던 포인트는, J가 방학 동안 본가 갔던 H2학기에 만나서 귀신 봤던 이야기를 했더니 둘이 본 귀신의 인상착의가 일치했다는 거다. 이 지점까지 오자 정말 귀신이라는 게 있나, 나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당시 둘의 정확한 묘사는 기억나지 않는데, 404호 귀신은 남자 귀신이었다. 변태 새X 죽어서까지 여기숙사 기어들어온다고 욕했어서 기억하고 있다.

 

 

2.

수학실

 

 제3교무실 맞은편, 3기숙사 옆에 수학실/화학실/생물실이 있는 1층짜리 건물이 있다. 이전부터 그 건물에 귀신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었다. 화장실에서 혼자 양치하거나 세수하고 있으면 양변기 칸 쪽에서 울음소리 비슷한 게 들린다고. 나중에 어떤 선생님께 들었는데 그 건물을 지을 당시 화장실 위치 쪽에서 인부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화장실을 혼자 많이 썼지만 이상한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대신 같은 건물 수학실에서 요상한 일을 겪긴 했다. 이 썰은 짧다.

 

 양서고는 전술했듯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야간까지 보충수업을 하시거나, 대치동 강사들을 섭외해 양서고에 방문하게 하는 식으로 사교육의 공백을 메웠다. 그렇게 여느 날처럼 나는 야간 보충수업을 받으려고 수학실에 갔다. 정시가 되자 그날 보충수업 담당이셨던 C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출석 체크를 위해 학생 수를 세셨다.

 

 “뭐야, 학생이 없는 게 아니라 더 있네. 21명이다 야.”

 그 수업은 20명이 듣는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당신께서 잘못 센 것 같으셨는지 한 번 더 학생 수를 세셨다. “열아홉, 스물, 스물 하나.” 여전히 21이었다.

 

 “누가 보충수업 잘못 찾아왔나? 이 수업 신청 안 한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웃으셨다. “뭐야 무섭게.”

 선생님께서 착각하신 줄 안 우리는 서로 두리번거리며 웃었다. 이어서 나를 포함한 3명 정도가 손가락으로 학생 수를 세어 보았다. 그런데 내가 셌을 때도 21명이었다.

 

 “21.”

 “선생님, 21명 맞는데요?”

 “21명이에요.”

 

 나는 잘못 셌나 싶어 한 번 더 셌다. 여전히 21명이었다. 이번엔 친구들 얼굴을 봤다. 다 이 수업 듣는 친구들이 맞았다. 누가 보충수업을 잘못 찾아온 건 아닌 것 같았다. 좀 소름이 끼쳤다.

 내가 직접 셌던 게 아니었다면 나는 친구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21명이었다. 내가 수를 못 셀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데.

 

 “그만, 그만. 20명이야 20. 수업하자!”

 C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고 세 번째로 셌을 때에야 학생 수는 20명이 되었다. 하지만 출석 체크를 시작한 후로 앞문, 뒷문이 열린 적은 없었다. 중간에 자리를 이동한 학생도 없었다. 수학실 안에 있었던 학생 수는 계속 똑같았다. 그런데도 3~4명이 동시에 수를 똑같이 잘못 세는 게 가능한가? 그날 우리가 뭐에 홀렸던 게 아니고서야?

 그 이후로 밤에 그 건물 갈 일이 생기면 항상 좀 찜찜했다.

 

 

3. 

 이외에 기숙사에 친구 목소리 흉내내는 귀신이 있다는 괴담도 돌았었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으면 밖에서 친구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데, 볼일 다 보고 나와 보면 친구가 없고, 그 친구한테 가서 아까 우리 방 오지 않았었냐고 물으면 간 적 없다고 한다는 것.

 그리고 방언니가 기숙사 캐비닛에서 모르는 사진 앨범을 발견하면 절대 열어보지 말고 버려.’라고 했었는데, 아쉽게도 저 말만 기억나고 자세한 괴담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4.

 이 글의 제목을 [괴담]이 아니라 [괴담과 전설]이라고 한 이유는, 아주 짧은 전설 하나를 같이 써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전승시키고 싶었던 전설.

 시험문제 어렵게 내기로 유명하신 K 영어선생님의 뱃살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학생은 수능에서 영어 만점 받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