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고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위치한 시골 학교다. 대입에서 농어촌 전형이 적용되고 아침이면 기숙사에서 이장님 방송 소리가 들리는, 그런 찐 시골이다. 공기 맑고 물 맑고 별 잘 보이는 조용하고 한갓진 동네.
시골이다 보니 교내에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 많이 살았다. 교내에서 척추동물 중에는 어류 빼고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를 볼 수 있었고 무척추동물 중에는 곤충류, 다지류를 볼 수 있었으니... 의도치 않은 자연 생태학교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글에서는 양서고에서 만난 여러 생물 친구들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1. 양서류
1-1. 참개구리
학교 다니는 동안 참개구리를 정말 많이 봤다. 근처에 두물머리가 있어서 그랬다. 1학년 때까지는 꽤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2학년이 되면서 참개구리에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한 녀석이 매우 안 좋은 추억을 선사해줬기 때문이다. 교내에서 참개구리를 보는 건 괜찮았으나 기숙사 방 안에서 보는 건 정말 달갑지 않았다.
2기숙사 2층 어디 호실이었는데 정확한 호수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방은 아니었고 S라는 친구네 방이었다. 타임 뛰던 중에 S가 날 찾아와 방 샤워실에 개구리가 나왔는데 잡는 걸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사감 선생님께 먼저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감 선생님께서 “나도 개구리는 안 잡아 봤다.”라며 딱 잘라 기각하셨다고.
S는 내게, 잡는 건 방 주인인 자기가 잡을 테지만 샤워실에 혼자 들어가기는 너무 공포스럽다며, 같이 들어가기만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S네 룸메이트들이 다 자기는 개구리 절대 못 잡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S가 총대를 멘 모양이었다. 불쌍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같이 있어 주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S와 둘이 목욕용 대야 하나만 달랑 들고 샤워실에 들어갔고 ㅎㅎ... 들어간 걸 후회했다.
집에 벌레가 나온다? 징그럽긴 해도 2차원으로 움직이니까 이동 경로가 대강 예상이 간다. 근데 개구리는 3차원으로 뛰어댕긴다. 그 좁은 직육면체 공간에서 (바닥평수 0.5평) 끝내주는 공간활용도를 보여주며 미친 속도로 사방팔방으로 뛰는데, 나는 그 안에서 그냥 제발 얘가 내 얼굴로만 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한참 뒤 S는 결국 수 번의 시도 끝에 대야로 개구리 생포에 성공했다. 근데 개구리가 숨은 쉬어야 하지 않겠냐며 대야를 살짝 들어올렸더니만 녀석이 그 사이로 제 앞다리를 쑥 내미는 거다... 그대로 대야를 바닥에 내리찍자니 앞다리가 잘릴 것 같았다. 잘린 앞다리를 바닥에서 주워서 버리는 걸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냥 그건 못한다.
어찌어찌 대야 바닥에 뭔가를 끼워서 개구리를 가둔 뒤 기숙사 밖 수풀에 던졌다. 하지만 던질 때 대야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대야를 뒤집어 봤을 때도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ㅎㅎ 녀석은 어디에서 탈출에 성공한 걸까...? ㅎㅎ...? 혹시 방에서~?
그래도 그 이후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에서 개구리를 본 적은 없었다. 참 다행이라고 할 밖에.
2. 파충류
2-1. 뱀
화단에서 세 번 정도 봤다. 독사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머리가 삼각형 모양이면 독사랬는데 애매하게 생겼었다. 뭐... 독사였대도 교내에서 학생이 물린 적은 없었다.
생각보다 순했다. 먼저 건드리지 않는 한은 1m 앞까지 가도 인간이 있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친구가 뱀 앞에 쪼그려 앉아 해리 포터 영화에 나오는 파셀통그(뱀 언어) 흉내 내길래 많이 웃었다. 거기서 뱀이 반응했으면 머글 앞 마법 사용으로 잡혀갔을 텐데.
선생님들께서 뱀으로 커플(JP)들을 자주 협박하셨다. JP들이 주로 만나는 교내 사람 없는 음지는 하나같이 뱀 많은 곳이라고, 데이트하다 뱀한테 물리는 수가 있다는 협박이었다. 뱀들이 인기척 없는 습하고 어두운 곳 좋아하니까 영 없는 소리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3. 조류
3-1. 꿩
사실 나는 못 봤다. 아쉽다.
매점 있는 건물 뒤에 뒷산이 있는데 가끔 출몰하는 모양이다. 1학년 때 한국사 H 선생님께서 수업하시다 말고 갑자기 창문 너머를 응시하시더니 “저기 꿩 있네.” 하셨었다. 그때 반 친구들 몇 명은 발견하고 신기해했지만, 난 동체시력이 좋지 않아서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3-2. 까마귀
양서고 입학 전까지는 까치만 많이 봤지 까마귀는 본 적 없었는데, 양평 가서는 거의 비둘기 급으로 까마귀를 많이 봤다. 까마귀는 흉조라지만 나는 녀석들을 좋아했다. 예쁘고 멋있게 생겼다.
까마귀를 직접 보기 전에는 까치와 까마귀가 비슷한 크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둘은 체급 차이가 상당했다. 까마귀는 50cm는 족히 된다. 새카맣고 윤기 나는 털에 체구까지 거대해서 직접 보면 위압감이 상당한 친구다.
평소에는 다들 까마귀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지냈지만, 모의고사 영어 듣기 시간에 까마귀가 울면 다들 짜증냈다. 아악- 아악- 하면서 우는데 영어 듣기 방해할 만큼 크게 운다.
한때 한 전문계 학생이 본관 옥상에 올라가서 까마귀 울음소리를 흉내 내곤 했다. 심심해서 그런 모양인데, 처음엔 다들 진짜 까마귀인 줄 알다가 사람인 걸 알고는 어이없어했다.
3-3. 닭 (네네)
양수리 무슨 교회 옆에 축사가 있었나 보다. 주변에서 듣기로 그랬다. 정확히 어떤 교회 옆이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여튼 양서고에 한동안 거주한 닭, 이하 ‘네네’ 는 여기서 탈주한 탈주계(鷄)였다.
이름이 네네인 이유는 네네치킨이 폐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학교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네네치킨이 폐업하면서 거기서 기르던 닭이 탈출한 거라는 설이 돌았었다. 물론 아니었다. 어떤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닭을 직접 잡아서 판단 말인가.
처음 네네가 학교에 나타났을 때 친구들은 학교에 이제 닭까지 사네, 하면서 재밌어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싫어하는 친구들이 늘었다. 이놈의 네네가 하필 수탉이었기 때문. 맨날 아침점호 종이 치기도 전에 꼬끼오- 해서 잠귀 밝은 학생들을 깨웠다.
네네가 학교에 나타나고 1~2주쯤 됐을까? 네네의 원래 주인인 아주머니가 네네 소식을 들으셨는지, 학교에 와서 네네 포획을 시도하셨다. 수업 시간에 창문 밖으로 그분이 네네를 쫓는 걸 봤는데 딱 봐도 영 힘에 부쳐 보이셨다. 결국 한두 시간 시도하시다가 포기하고 돌아가셨다.
그걸 보고 저 닭 한 번 잡아보자며 열 명 가까이의 여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닭몰이에 나섰다. 나도 거기 껴있었는데, 와, 닭 진짜 빠르더라. 몸집도 작은 게 의외로 굉장히 날쌨다. 게다가 좀 수세에 몰린다 싶으면 바로 화단 수풀 위로 점프해 들어가는 바람에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었다.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닭 쫓던 인간 수풀 위만 쳐다봤다.
이후 네네는 사나흘쯤 학교에 더 머물다 누군가 마침내 포획에 성공해서 축사로 돌아갔다. 남학생들이 잡아서 축사에 가져다 줬다는 얘기도 있고, 축사 주인 아저씨가 오셔서 잡아갔다는 얘기도 있는데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3-4. 박새, 곤줄박이, 참새, 직박구리
넷 다 자주 봤다. 얘네는 크게 쓸 말은 없다. 곤줄박이나 직박구리는 새 폴더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신기했다 정도?
가끔 참새가 비행 실수로 급식실에 들어와서 빙글빙글 돌다가 나가곤 했다.
(2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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