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양서고 이야기

양서고 이야기 9. 수행평가

 양서고 다니면서 기억에 남았던 수행평가들이 몇 있어 적어보려고 한다.

 

 

1. 체육 수행평가

 

 1학년 때 학년 전체가 유도를 배웠다. 그래서 유도복을 들고 있으면 무조건 1학년이었다. 아직도 양서고 신입생들 유도 배우려나?

 유도는 전방/후방/측방낙법, 업어치기까지 배웠다. 업어치기는 친구를 업어치는 걸로 점수를 매겼기 때문에, 키 작고 마른 친구들이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체육 잘하는 건장한 남학생 K도 러브콜을 받았는데... K는 수행평가 치는 친구가 업어치는 척을 하면 타이밍에 맞게 몰래 점프를 해서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업어치는 사람이 A+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유도는 재미있긴 했지만 기숙사에서 유도복 세탁하기가 어렵다 보니 여름철에 유도복 냄새가 심했던 기억이 난다.

 

 2학년 1학기에는 농구를 배웠다. 골밑슛과 레이업슛 성공 개수로 점수를 매겼던 걸로 기억.

 우리 기수에는 농구 수업 이후 농구에 흥미가 생긴 된 여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이 친구들이 결성한 비공식 동아리가 농심 (농구를 향한 마음)’ 이었는데, 이 친구들은 시간 날 때마다 농구코트 가서 원바운드 아이스크림 내기를 하곤 했다.

 이 농심 멤버 중 한 명이었던 J는 농구하다가 농구부 담당 선생님 눈에 띄어 체대 진학을 권유받았고, 3 때 체대 입시 준비하더니 SKY 체육교육과에 갔다.

 

 2학년 2학기에는 댄스 스포츠를 했다. 다들 댄스 스포츠보다는 키카키로 불렀는데, 원투~ 키카키~ 키카키~ 구령에 맞추어 춤을 췄기 때문이다. 원래 다들 키카키로 부르는 건지 아니면 체육 선생님께서 키카키라는 구령을 지어내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남녀가 짝이 되어 췄다. 이과반은 남학생이 더 많고 문과반은 여학생이 더 많다 보니 이과반에서는 몇몇 남학생이 여자 역할을 했고 문과반에서는 몇몇 여학생이 남자 역할을 했다.

해리 포터 덕후에게 <불의 잔> 속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깨우치게 해준 수행평가였다. 이걸 해보기 전까지는 트리위저드 댄스파티가 그저 멋있기만 했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음... 애들이 왜 댄스 연습 안 좋아했는지 알겠더라.

 

 

2. 음악 수행평가

 

 음악 수행평가도 이것저것 했었다. 가곡도 부르고, 듀엣도 부르고, 뮤지컬도 하고, 악기 연주도 하고... 양서고가 공부에 초점이 맞춰진 학교였긴 하지만, 음미체 선생님들께서 너무 공부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는 이것저것 해보게 유도해주셨던 것 같다.

 

 가곡은 산 너머 남촌에는’ ‘울게 하소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중 택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울게 하소서부르다가 고음에서 삑사리 내고 B+ 받았다. 이때 이 곡을 선택한 덕분에 <펜트하우스> 보다가 배로나 오윤희가 울게 하소서부를 때 원어로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라샤 끼오 삐앙가~ 라 두라 소르테~

 

 듀엣은 곡은 기억나지 않는데, 남녀 듀엣이었기에 누가 여기숙사에서 여자 파트를 연습하고 있으면 남기숙사에서 그걸 듣고 남자 파트를 불러주곤 했다. 얼굴 모르는 이성과의 노래 연습. 제법 <오페라의 유령> 내용 같지 않은가.

 

 뮤지컬은 너덧 명이 팀을 꾸려서 뮤지컬 <그리스>Summer nights를 개사, 춤추고 연기하면서 부르는 거였다.

 이건 수행평가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기보다 이에 관련된 일이 웃겼어서 남겨 둔다. 당시 나는 양서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토요일마다 한길요양병원에 봉사활동을 다녔다. 봉사 내용은 요양병원 어르신들께 말벗이 되어 드리고 가끔 노래와 춤을 준비해서 재롱잔치를 열어 드리는 거였는데, 이때 음악 시간에 배운 곡들을 많이 활용했다. 학년 전체가 그 곡은 다 아니까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 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르신들 앞에서 Summer nights를 불렀는데,

 

 summer lovin' 해질녘에~ summer lovin' 황홀하게~

 난 만났지 화끈한 그녀~ / 난 만났지 달콤한 그애~

 summer day 그 짧은 만남 oh-oh 지난 summer night

 tell me more tell me more "어디까지 갔니?“

 

 할아버님 한 분이 흥이 오르셨는지 하필 어디까지 갔니?“ 부분에서 얼쑤~ 어디까지 갔냐~!“ 하고 추임새를 넣으시는 거다. 맥락상 남녀 간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냐고 묻는 부분인데 노래가 주로 영어다 보니 무슨 뜻인지 모르셔서 그냥 들리는 한글 부분을 따라 하신 것 같았다. 노래 부르던 다섯 명이 다 같이 풉 하고 터졌었다. 왜 다른 부분에서는 안 하셨으면서 거기만 따라 하신 거예요.

 

 근데 쓰고 보니 안 웃기다. 

 역시 이런 건 아직 남녀상열지사가 금기일 때나 웃긴 거다. 너무 나이 들어 버렸다.

 

 

3. 화학 수행평가

 

 1, 2학년 때는 사실 위에 쓴 수행평가들 외에도 영어 연극 수행평가, 사회 지역 탐사 수행평가 같은 특이한 수행평가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3학년 때는 모든 초점이 입시와 수능에 맞춰져 있어서 웬만하면 특이한 수행평가를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화학 시간에만 특이한 걸 했다. 그것은 바로 비눗방울 만들기 수행평가와 유리 스포이드 만들기 수행평가.

 

 비눗방울 만들기 수행평가는 가용한 모든 재료를 동원해서 가장 크고 오래 지속되는 비눗방울을 만들면 되는 수행평가였고, 유리 스포이드 만들기 수행평가는 달궈진 유리를 최대한 길고 얇게 뽑아내서 스포이드 형태를 만들면 되는 수행평가였다.

 

 나는 수능에서 물리1 생명과학2를 선택한 화포자라, 비눗방울 만들기와 유리 스포이드 만들기가 무슨 화학 법칙을 배우게 해주는 수행평가였는지 모른다. 이 수행평가를 통해 내가 깨우친 건 비눗방울을 크고 강하게 만들려면 물엿을 넣어야 한다는 것뿐... 하지만 여하튼간 재밌었다. 비눗방울 수행평가 친 날은 다들 화학실 옥상에 올라가서 남은 용액으로 비눗방울을 불었다. 어쩌면 화학 선생님께서는 고3들 잠시 쉬어가라고 그런 수행평가를 만드신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