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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고 이야기

양서고 이야기 8. 생물들 (2편)

(1편에서 이어짐)

 

4. 포유류

4-1. 고양이

 

 고등어와 굴비라는 두 마리의 학교 고양이가 있었다. 고등어는 고등어 태비였고 굴비는 치즈냥이였다. 둘 다 새끼때부터 학교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산 탓에 끝내주는 개냥이였는데,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없다 보니 맨날 축구 골대 앞 인조잔디에 누워있어서 남학생들이 축구하다 방해받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고등어가 사라지더니 굴비마저 자취를 감췄다. 어디 갔을까...

 

4-2. 들개

 

 딱 한 번 봤다. 두 마리가 쌍으로 학교에 출몰했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 처음에는 개가 아닌 줄 알았다. 사람 허리까지 오는 크기였고 골든리트리버 성견보다 컸다. 한 녀석은 케르베로스마냥 온몸이 새카맸고 다른 녀석은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 안 난다.

 얘네가 학교에 침입한 날 사감부에서 교내에 들개가 돌아다니니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전체방송을 띄웠다. 그래서 다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구경했다.

 

4-3. 고라니

 

 고라니도 매점건물 뒷산에 가끔 출몰했다. 고라니는 진짜 꾸웨엑 하고 운다.

 교내에서는 못 봤다. 내가 입학하기 더 전에는 고라니들이 교내까지 내려오곤 해서, 학교 선생님 한 분이 퇴근하시다 고라니를 차로 치어 폐차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다.

 

5. 곤충류

5-1. 긴날개여치

 

 양서고에서 처음으로 만난 생물이다. 중학생 때 양서고 입학설명회 갔는데 내 어깨 위로 튀어 올랐다. 양서고가 물가여서 있었던 모양.

 

5-2. 나방 (미국흰불나방 추정)

 

 미국흰불나방이 맞는지 확실치 않다. 하얀 날개에 검은 점이 하나 찍혀 있던 것만큼은 확실해서 그걸 토대로 찾아봤더니 그나마 이게 제일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 미국흰불나방 추정이라고 적었다. (미국흰불나방은 1화기 성충 때 날개에 검은 점이 있다고 함.) 그렇지만 흰독나방일 수도, 아예 다른 제3의 나방일 수도 있다.

 

 얘네는 매점 건물 뒤쪽으로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살았다. 모여 있는 게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하늘하늘한 새하얀 나방들이 한데 모여서 깜박깜박거리는데 영화 <아바타> 속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신비로운 컨셉의 게임 일러스트 같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창밖 보면서 멍 많이 때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징그럽다.

 

 흰나방 외에 군대 팅커벨로 유명한 긴꼬리산누에나방도 몇 번 보였다.

 

5-3. 바퀴벌레

바퀴벌레는 징그러우니까 한때 유행했던 바퀴 프사로 대체

 

 바퀴벌레가 나오는 기숙사 호실과 나오지 않는 호실이 있었는데, 나는 정말 운 좋게도 3년 내내 바퀴벌레를 보지 않고 졸업했다. 하지만 양서고에서 못 본 만큼 대학교 기숙사 가서 많이 봤다. ㅎㅎ...

 

 층마다 유명한 버그헌터들이 있었다. 벌레 못 잡는 친구들만 모인 호실에서 바퀴가 나오면 그 호실 사람들이 해당 층 버그헌터에게 찾아가 사냥을 의뢰하곤 했다. 사냥에 성공하면 버그헌터들은 보답으로 감사 인사와 소정의 먹을거리를 받았다.

 

 버그헌터하니 2기숙사 5층 버그헌터였던 A양이 기억난다. 모든 종류의 벌레를 다 잘 잡는 친구였는데, 한 번은 급식실에 벌이 들어와 모두가 아비규환인 와중 침착하게 반찬으로 나온 상추쌈을 들어 그걸로 벌을 잡았다. 버그헌터의 칭호는 아무나 받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5-4. 귀뚜라미

 

 별관 (3교무실 있는 건물) 4층에 유독 많았다. 교실 청소도구함 근처에 자주 출몰했다.

 개인적으로 귀뚜라미가 바퀴벌레보다 싫다. 바퀴벌레는 웬만하면 기어다니고 사람 피해 다니는데, 귀뚜라미는 사람 바로 옆을 허리 높이로 뛰어서 지나쳐 간다. 생긴 것도 귀뚜라미나 바퀴벌레나 비슷하게 징그럽다고 생각한다.

 울음소리가 운치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바퀴벌레보다 좋은 대접을 받는 것 같은데, 영 마음에 안 든다.

 

5-5. 유리알락하늘소

 

 종합교육관 건물에 진짜 많았다.

 여름에 종합교육관에서 걷다가 발밑에서 으직 소리가 난다? 100% 유리알락하늘소가 깔려 죽은 거였다. 복도에 깔려 죽은 유리알락하늘소 사체가 즐비했다.

 

 C 생물 선생님께서 하늘소는 멸종위기종인데 양서고 학생들은 이걸 막 밟고 다닌다, 발밑 좀 보고 다녀라.’라고 한탄하신 적이 있는데, (멸종위기종인) 장수하늘소도 양서고에 살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유리알락하늘소는 해충이니까 밟고 다녀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제는 밟는 본인이 괜찮다면. 나는 슬리퍼에 하늘소 사체 묻는 게 싫어서 여름에 종합교육관에서는 바닥만 보고 다녔다.

 

6. 다지류

6-1. 그리마 (돈벌레)

 

 기숙사에서 3년 내내 바퀴벌레는 못 봤지만, 그리마는 두 번 봤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리마는 그닥 혐오스럽지 않다. 생김새는 징그러워도 습성이 꽤 괜찮은 친구다. 집안에 서식하는 바퀴벌레를 먹어 치워줄뿐더러, 사람을 무서워해서 최대한 사람 눈에 띄는 걸 피한다고 한다.

 

 게다가 나타났을 때도, 잡으려고 들면 바퀴벌레보다 잡기 쉽고, 쫓아내려고 들면 자기가 알아서 최선을 다해 사라져준다. 아무리 봐도 바퀴벌레보다 훨씬 낫다. 괜히 조상들이 돈벌레 죽이면 돈복 나간다고 한 게 아니다. 다 생활의 지혜가 있었던 것.


 

 이렇게 해서 양서고에서 만난 생물 친구들을 정리해 보았다. 생물 관련된 썰이 많아서 언젠가는 꼭 쓰고 싶었는데 다 쓰고 나니 뿌듯하다.

 내가 대학 가서 그 수많은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다 양서고가 날 여러 생물로 단련시켜준 덕분이다. 고마울 따름.